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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 문용린 전 교육부 장관의 新천재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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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양천센터 작성일10-06-17 10:29 조회2,14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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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용린 전 교육부 장관의 新천재론
문용린 서울대 교수·교육학, 전 교육부 장관 [email protected] / 권재현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email protected]/ 일러스트·윤진경

박태환, 김연아, 윤준상, 박세은…‘다중지능 하모니+ 광적 몰입+김칫독 발효’

한국 교육은 개성과 창의성을 억누른다고 비판받는다. 그럼에도 최근 여러 분야에서 우리 젊은이들이 불꽃같은 천재성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들은 어떻게 ‘천재도 바보로 만든다’는 열악한 조건에서 빛을 발할 수 있었을까. 소질과 재능을 충분히 발효시켜 ‘21세기 新천재’로 부상한 이들의 성공 요인을 분석했다.

21세기 新천재론

그동안 사람들은 보통 사람과 비교가 안 될 만큼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을 가리켜 ‘신동(prodigy)’ 또는 ‘천재(genius)’란 말을 명확한 구분 없이 사용해왔다. 그러나 이 분야에 대한 연구가 깊어지면서 학자들은 이 두 단어를 구분해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신동이란 ‘타고난 능력’이 비범한 사람을 가리키고, 천재란 ‘업적’이 비범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 역사에서 김시습과 이율곡 같은 이는 여섯 살 안팎의 나이에 경탄할 만한 한시(漢詩)를 지었고 예지가 번득이는 재치를 발휘했다고 한다. 이런 재주는 학습과 경험의 덕분이라기보다 타고난 능력의 특출함 덕분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시기의 김시습과 이율곡은 천재라기보다 신동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

이에 비해 뉴턴이나 갈릴레이, 그리고 아인슈타인은 보통 사람이 감히 흉내도 내지 못할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어린 시절 그들의 타고난 능력이 어떠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단지 그들의 경탄할 만한 업적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이들을 신동이라 부르기보다는 천재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

신동은 꽤 있었지만 천재는…

우리나라에도 신동은 많았다. 그러나 천재는 희귀했다. 어릴 적에 특출한 재주를 보인 사람은 꽤 있었으나 그 능력으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은 많지 않다는 얘기다. 우리는 TV나 신문 등 매스컴에 소개된 여러 신동을 기억한다. 기억, 암산, 한자, 영어 단어 등에서 놀랄 만한 능력을 과시한 어린이가 많았지만 세계인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위대한 업적을 낸 사람은 매우 드물다. 즉, 신동은 꽤 있었으나 천재는 없었다.

교육학의 긴 역사 속에서 천재 이야기를 할 때 가장 자주 언급되는 사람이 카를 비테다. 1800년 독일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놀라운 능력의 소유자였다. 한 살도 되기 전에 글자를 읽고 썼으며, 일곱 살 때까지 모국어(독일어)는 물론 라틴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를 유창하게 구사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런 실력을 바탕으로 아홉 살에 당시 독일 최고 명문인 라이프치히대에 입학했고, 열여섯에 법학박사가 되어 베를린대 교수로 취임했다.

분명 카를 비테는 놀라운 능력을 가졌고 그를 신동이라 일컫는 데 대해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능력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기록해 1000여 쪽의 ‘양육 노트’에 남겨 놓았다.

그럼 카를 비테는 어떤 업적을 남겼는가. 어떤 기록도 존재하지 않아 우리는 지금 그에게로 영광을 돌릴 어떤 업적도 알지 못한다. 자랄 때는 대단한 신동이었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위대한 업적을 남기지 못한 그를, ‘빛을 보지 못한 천재’라고 부를지언정 ‘천재’라고 하기는 어렵다.

이 점은 아인슈타인과 대비된다. 열여섯 살 이전의 아인슈타인에게서 특출한 능력을 발견하거나 감지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학교를 졸업한 후에 과학의 전체 패러다임을 바꾸는 엄청난 업적을 남겼다. 신동은 아니었지만, 그가 성취해낸 위대한 업적은 결과적으로 그를 천재라 부르게 만들었다. 카를 비테는 신동이지만 천재는 아니었고, 아인슈타인은 신동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론 천재였다.

김주리 양은 초등학교 2학년 무렵 토혈을 경험할 만큼 소리 연습에 매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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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의 재주와 재능은 그것만으로 위대한 업적을 이룰 수 없다. 그 재주와 재능을 어떤 목적을 향해 갈고닦고 몰입하고 노력했을 때 업적을 이룰 수 있다. 그래서 에디슨은 “위대한 발명은 1%의 천재성과 99%의 땀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한 것 같다. 천재는 재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노력이 필수적인 요소다.

기네스북(1986~1989)이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세계 최고의 지능지수(IQ)를 가진 사람은 미국인 마릴린 사반트다. 이 여성의 IQ는 228로 알려져 있다. 그럼 그는 천재인가? 그는 신동도 아니었고, 이렇다 할 위대한 업적을 내지도 않았다. 단지 IQ가 높다는 것 외에 내세울 만한 재능이나 업적이 없다. 대학도 다니다 중퇴했고, 작가가 되는 것이 평생의 꿈이었지만 그것도 이루지 못했다. 60세가 넘은 현재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고 있다. 일요판 신문에 상담 칼럼을 게재하고 있을 뿐이다.

IQ의 위기

IQ가 높은 사람들만 가입하는 모임이 여러 개 있다. 멘사클럽에는 전체 인구의 IQ 분포에서 상위 2% 안에 드는 사람만 가입할 수 있는데 기준 IQ가 135 이상이어야 한다. 국제고도IQ소사이어티에는 기준 IQ가 124 정도이며 상위 5% 안에 드는 사람만 회원이 될 수 있다. 그 밖에도 프로메테우스소사이어티와 기가소사이어티가 있는데 가입 기준이 각각 상위 0.003%, 0.000000001%로 대단히 까다롭고, 기가소사이어티의 경우에는 기준 IQ가 190으로 확률상 세계적으로 10명이 채 안 된다.

그렇다면 IQ가 높은 사람들은 모두 천재인가. 그들은 모두 경탄할 만한 업적을 내고 있는가. 1996년에 발족한 한국의 멘사클럽에는 약 700명의 회원이 있다고 한다. 회원들을 대상으로 학창시절 학교 성적이 어떠했는지 물어보았다. 그 결과 최상위권에 속했다는 사람이 19%(254명 중 49명), 상위권에 속했다는 사람이 47%(254명 중 121명), 중하위권에 속했다는 사람이 23%(254명 중 61명)로 나타났다. 이들의 IQ는 최상위권이지만 학교 공부에서는 모두가 최상위권은 아니었다. 최상위권인 사람(19%)보다 오히려 중하위권인 사람(23%)이 더 많았다.

이런 결과는 결코 놀라운 것이 아니다. ‘IQ가 높은 사람이 학교 공부를 잘한다’는 믿음은 사실이 아니다. IQ와 학교 성적의 연관성 정도는 기껏해야 20~25%다. IQ 순서대로 학교 공부를 잘하는 것이 아님은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서 밝혀졌다.

IQ만 갖고 천재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은 옳지 않다. 역사상 위대한 업적을 낸 위인들을 살펴보면 IQ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요소가 많다. 아인슈타인의 업적이 높은 IQ 덕분이었다면 그는 왜 초등학교, 중학교 성적이 낙제를 간신히 면하는 수준이었겠나. 에디슨의 위대한 발명 능력이 IQ 덕분이었다면 그는 왜 초등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중도 탈락할 수밖에 없었는가. 예술적인 천재들을 IQ로 설명하긴 더욱 어렵다. 모차르트, 베토벤, 피카소, 고갱, 고흐의 위대성을 IQ로 설명할 수 있을까.

오늘날 IQ는 위기에 처해 있다. IQ가 인간의 비범성을 재는 정확한 척도가 아닌 것 같다는 의구심이 계속 부풀어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IQ가 인간의 잠재된 능력을 재는 지표로 활용된 지 100년을 넘어서고 있는데 그간 IQ에 대한 비판은 계속 제기되어왔다.

그 비판의 핵심은 IQ검사 때 ‘인간의 수많은 능력 중 극히 일부를 재고는, 전체를 잰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머릿속에 잠재된 능력은 무한하다. 어떤 이는 이 능력의 개수를 2조1400억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이렇게 많은 능력 중에서 IQ검사 항목에서 측정하는 것은 기억력, 계산력, 지각력, 추리력, 어휘력, 언어유창성, 공간지각력 등 겨우 10여 개에 불과하다. 그러니 IQ가 사람의 다양한 성취를 설명하고 예언하는 데 한계가 있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IQ검사에서 측정하지 못하는 중요한 능력 중 대표적인 것이 창의력(creativity), 정서능력(emotional ability), 적성(aptitude)이다. IQ검사로는 인간의 능력 중에서 아주 기초적이고 일반적인 인지능력인 기억력, 추리력, 지각력, 언어능력 등만 잴 수 있을 뿐 창의성, 정서능력, 적성을 재지 못하므로 학교 성적이나 출세와 성공 등 종합적인 삶의 성취와 업적을 예언하는 데는 효과적이지 못하다.

출처: 신동아 2007.11.01 통권 578호(p348~360)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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